고찰

무의식의 끌어내림

프리어 2025. 4. 7.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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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 항상 듣는 질문이 있다. “요새 어떻게 지내?” 전업 투자자라는 내 직업을 아는 지인들은 그 외의 시간엔 뭘 하냐고 묻는다. 대부분 집에 있고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꼭 듣는 말이 있다.

"좀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그래."

그럴 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라는 거지? 친구들?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뭐가 좋은 거지?

물론, 그런 말들이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건 안다.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지 않겠냐는 의미다. 하지만 전업투자는 정신적인 소모가 크다. 오히려 사람을 안 만나고 혼자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더 유익하다. 책을 읽거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그런 시간 말이다.

나는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한 번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 롤모델이 있는가? 그들이 사람들 만나며 놀 거 다 놀고 그 자리에 갔을까?"

예전엔 그런 말들이 불쾌했지만 지금은 안타깝다. 무언가 간절히 이루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들, 그래서 남들이 말하는 게 맞다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

주식시장이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노력은 장중에만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장이 끝난 후가 더 중요하다. 몰입이란 그런 것이다. 반드시 성취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외의 시간은 오히려 쉬고 싶어진다. 그래야 다시 몰입할 체력과 정신력이 생기니까.

스포츠 선수에게 경기할 때만 훈련하냐고 묻는 것과 같다. 경기 없는 날 뭐하냐고 물었을 때 쉬고 있다고 답하면, "왜 집에만 있어, 나가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밖에 나가고 사람들 만나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렇게 살아온 당신들의 삶은 과연 만족스러운가?

그렇게 살아오면서도 여전히 돈을 더 벌고 싶다고 말하고, 더 나은 삶을 꿈꾼다면 나는 묻고 싶다. 왜 다 똑같은 생각, 똑같은 말, 똑같은 방식으로 살면서 남들과는 다른 결과를 기대하느냐고.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들이대는 것은 충고를 가장한 무의식의 끌어내림이다. "어? 너 높은 곳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더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가지 마... 가지 마... 그냥 나랑 같은 곳에 있어..."

 

사람의 뇌는 교묘하다.
그냥 하기 싫은 것도, 두려운 것도, 불편한 것도
‘명분’을 만들어 낸다. 그래야 스스로를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명분이 정말 옳든 옳지 않든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기합리화다.

  • "해봤자 의미 없어."
  • "요즘은 그런 거 안 통해."
  • "내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어."

자신의 무력감이나 실패를 직면하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다. 하지만 그게 반복되면, 결국 스스로 진짜로 믿게 된다. '하고 싶지 않다'가 '할 수 없다'로 바뀌는 순간, 가능성은 스스로 끊어내버린다.

그래서 나는 꿈이나 목표가 진짜인 사람과, 감정의 환상처럼 착각하는 가짜를 이렇게 구분한다.

진짜는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난이도? 상관없다. 어렵든 쉽든 해내고 싶기 때문이다.
기간?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걸리든 반드시 이루고 싶은 것이니까.
주변 시선? 그건 소음일 뿐이다.

하지만 가짜는 조건부터 따진다.
어려우니까 못 하고, 오래 걸려서 안 하고, 남들이 뭐라 할까봐 시작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마인드로 뭔가 이룬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기준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한다.
성취는 감정이 아니다. 의지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있다.
“했으면 좋겠어”와 “해야만 해”는 완전히 다른 말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에 비만인 사람은 많다.
그 사람들이 다이어트 방법을 몰라서 살을 못 빼는 걸까? 아니다.
덜 먹고, 운동하고, 꾸준히 하면 된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 왜 못 할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나 게임처럼 "매달 1kg 못 빼면 죽는다"는 설정이라면 어떻게 될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뺄 거다.
그땐 '빼면 좋겠어'가 아니라 '안 빼면 죽어'가 되니까.

이건 모든 목표에 똑같이 적용된다. "돈 많이 벌면 좋겠어", "성공하면 좋겠어"
이건 그냥 희망이다. 간절함이 아니다.

진짜 성취는 언제 나오냐면,
'이걸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생겼을 때다.
그때 비로소 사람은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마음 없이 수단과 방법만 찾는다.
그러니 흔들리고, 포기하고, 남 탓을 하게 된다.

문제는 '꿈이 없다'가 아니다.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이유'가 없다는 것.

 

골을 통과하는 게 정말로 간절하고 절실한 사람이라면, 남들이 앞서고 있다고 해서, 나를 제쳤다고 해서, 내가 힘들다는 이유가, 골을 늦게 통과하는 이유는 될 수 있어도, 경기를 포기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경기를 포기하는 명분으로 삼는다.

앞서간 사람이 있다는 사실, 지금 당장은 힘들다는 이유, 다른 사람들은 이미 해냈다는 불안감, 그 모든 것이 자신을 멈추게 만들지만, 진짜 간절한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실함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건 내 마음속에 어떤 문장이 적혀 있느냐는 것이다.

“하면 좋겠다”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인가.

그 문장 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꾸고,
행동의 강도를 결정하고,
미래의 결과를 갈라놓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남들과 같은 기준, 같은 방식, 같은 속도에 나를 맞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삶은,
남들이 가르쳐주는 방식으론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좀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그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다.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도 없었고,

혼자 만의 시간을 가져서 자기객관화를 바탕으로 한 자아 성찰을 한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떤 회사가 있어.

지속적으로 자기 자본을 써가며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려. 넌 그 기업에 투자할거야? 라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다

"아니. 누가 그런데다 투자해."라고 할거면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행동(술, 담배, 중독 등)을 하고 있는 사람이던가

 

돈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돈이 생기면 그렇게 좋아하는, 눈앞에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복기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서 결과가 바뀌길 바라는 그저 그런 수준.

 

이글을 보면 대부분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대부분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 중에 하나니까 나 저격해서 얘기하나 싶을 것이다.

위의 내용은 특정 누군가가 아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공통점을 얘기한 것 뿐.

 

더더욱 이해가 안가는 것은

자신한테 집중하고 자기 시간을 가진 사람들의 결과에 열광하거나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 나 또한 모순인 부분이 있다. 깨닫는 모순과 깨닫지 못하는 모순이 있음을 알고 있다. 

분명한건 그것을 고치고 수정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면 또 "나도 나만의 시간을 가져"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결과값이 바뀌지 않는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저런 것들 투성이다. 입장을 바꿔서 여러분이 나라면

당신은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할까?